어찌나 슬픈지 한 동안 슬픈 이야기는 제 가슴에 담겨서 작은 파문처럼
일렁일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008년 4월8일 화요일 부산대학병원 응급실 하얀 침대 위에는
너뮤도 작고 가냘픈 할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습니다.
백지장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할머니는
잠든 아가의 숨소리처럼 새근새근 거렸습니다.
"박명자, 63세 "
잠든 할머니의 침대곁에는 말없이 손수건으로 하얀시트 색깔과 같은
작은 할머니의 이마며, 눈가를 닦아 내 주며
"명자야, 눈 좀 떠 봐 언니 좀 보라구 그만 자"
라며 혼잣말로 눈시울 붉히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할머니, 엠뷸런스는 타고 가시면 도착시에 현찰을 바로 주어야 해요.
돈 준비 되었어요?"
하고 대학병원 안내 아저씨가 소리쳤습니다.
"나 돈 하나도 없어요"
"할머니가 보호자 아니에요?"
"아니라요 저는 이웃집 할미라요 명자가 우리집에 찾아와서
몸이 아프다고 하여 델고 왔어요.
병원에 올 때 명자손에 있던 돈 4만원하고 내가 가진 돈2만원으로
택시타고 이곳에 왔어요. 이제 돈 하나도 없어요."
"어쩌나요 엠뷸런스는 외부업체가 하는 일이라서 도착즉시 현찰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 곤란하네"
안내 아저씨가 이내 응급실을 빠져 나갔습니다.
갑자기 작은 침대에서 어제부터 잠만 새근새근 자는 명자 할머니가 궁금해져서
"할머니, 박명자 할머니랑은 어떤 사이에요? 명자 할머니는 가족이 없나요?"
하고 내가 집요하게 물으니 눈물을 훔치며
이마를 닦아주던 손을 멈추고 슬픈 이야기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 명자는 가족이 하나도 없어 세상에서 지 몸뚱이뿐이야
글쎄 내가 지 언닐줄 알어. 요번에도 그랬어 보름정도 되었나?
아프다고 나한테 찾아왔어 그래서 내가 따신 밥을 해서 열흘 정도 먹이고 같이
우리집에서 생활했는데 글쎄 엊그제 지독하게 아프다는거야
명자는 대장암으로 고생하고 있었어 그 날도 심하게 아프다며 돈 4만원을 내 놓고선
병원에 데려 달랬어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던 2만원 보태서 택시 타고
창녕군 영산면 동리에서 택시 타고 부산대학병원에 온 거야.
이젠 나도 돈이 한푼도 없으니 명자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하나 난감하네 ?
명자 죽으면
진달래꽃 피는 영취산 산자락에 묻어 주기로 했는데
하시며 눈물을 삼키는 할머니가 어찌나 딱하고 불쌍한지
명자할머니를 지긋하게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명자할머니의 작은이야기를 들으며 하얀 침대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흘렸습니다.
죽음이 명자할머니를 데려 가려고 침대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내 눈에도
막 보였습니다. 용기 내어 보드라운 아가같은 작은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명자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요?"
하고 내가 묻자 이내 눈에서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명자할머니가 지금 누군가가 보고 싶은것 같아요.
보세요. 제 손을 꼬옥 붙잡잖아요. 입은 또 무어라고 말을 하는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나 봐요"
"그래 명자야, 니도 보고 싶구나 너 싫다고 찾아갔을때 문전박대
한 딸년들이 보고 싶어? 그래도 에미라고 저렇게 눈물 흘리는것 좀 보소
명자야, 걱정 마 넌 할미꽃이야 넌 이 땅에 아무도 없어 할미꽃 전설 몰라?"
"무슨말씀 하세요. 명자할머니도 자식이 있었나요?"
"그래 30년전에 서울에 살고 있는 딸들에게 찾아가니 어렸을때 버린엄마는
엄마도 아니라며 아는척도 않더래. 그길로 명자는 혼자가 되었어
에고 불쌍한것 저나나나 배급 타서 먹고 사는 영세민, 생활보호 대상자라요"
"어떡해요 이 일을
인도에선 가난한이가 죽으면 갠지스강에 그대로 버린다는데...
명자할머니, 이돈으로 영취산 가실 때 노자돈 하세요"
하고 돈만원을 손에 꼭 쥐어 주었습니다.
명자할머니의 세상과 이별하기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서 눈물가득 흘리던 할머니
진달래꽃 피는 봄날에 하늘로 훌훌 날아간 명자할머니 곁에는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따스하게 손 잡아 준 일흔세살 이웃 할머니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