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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글: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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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작성일 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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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셨다..

중풍은 있는 정 다 떼고 가는 그런 병이다..

학교에서 집에 들어오면 확 코를

자극하는 텁텁한 병자냄새....

얼굴 높이에 안개처럼 층을 이룬

후텁지근한 냄새가 머리가 어지럽게 했다..

일년에 한두번 밖에 청소를 안하는 할머니 방은

똥오줌 냄새가 범벅이 되어

차마 방문을 열어보기도 겁이 났다..

목욕도 시켜드리지 않아서

할머니 머리에선 항상 이가 들끓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난 후..

처음 1년 동안은 목욕도 자주 시켜드리고

똥오줌도 웃으며 받아내었다

2년 째부터는 집안 식구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3년째에 접어들자 식구들은

은근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길 바라게 되었다..

금붕어를 기르다가 귀찮아져서

썩은 물도 안 갈아주고 죽기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 무관심은 살인이 될 수도 있다....

온몸에 허연 곰팡이가 피고

지느러미가 문드러져서 죽

어가는 한 마리 금붕어 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곪아갔다...

손을 대기도 불쾌할 정도로....

그래서 더욱 방치했다...

나중엔 친자식들인 고모들이 와도

할머니방엔 안들러보고 갈 지경이었다..

돌아가실 즈음이 되자 의식도

완전히 오락가락 하셨다..

그토록 귀여워하던 손주인

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건강하셨을때..

나는 할머니랑 단 둘이 오두막에서 살았었다..

조그만 전기담요 한 장에

할머니 젖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아침은 오두막 옆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워서

삶아먹는 걸로 대신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굵은 밤을

먹이려고 새벽부터 지팡이를 집고 밤을 주우셨다..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는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이성이 퇴화 할수록

동물적인 본능은 강해지는지 걸까..

그럴수록 먹을 건 더욱 밝히셨다..

어쩌다 통닭 한마리를 사다드렸더니..

뼈까지 오독 오독 씹어드셨다...

섬짓하기 까지 했다...

병석에 누운 노인이 그 많은

통닭 한마리를 혼자서 다 드시다니...

가끔 할머니에겐 돈이 생길 때가 있었다..

고모들이 할머니 방문 앞에 얼마씩 놓고 간 돈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아내가 남자의 골방 머리맡에

잔돈을 놓고 가듯 말이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는 그 돈을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주셨다..

한꺼번에 다 주면 다음에

달라고 할 때 줄게 없을까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할 때면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먼저 갔다..

엄마가 '먹이'를 넣으러 왔다 갔다 할 때

말고는 그방을 출입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날이던가..

결국 할머니의 돈이 다 떨어졌다..

나는 돈을 얻기 위해 할머니를 고문했다..

손톱으로 할머니를 꼬집었다...빨리 돈을 달라고...

그렇지만 얻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정말로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꼬집혀서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먼가를 줄 수가 없어서 였을 것이다..

가끔 할머니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 꼼지락

하시는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시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도 제대로

못부르는 할머니를 피하기만 했다..

할머니에게서 더이상 얻을 돈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간혹 한밤중에도 '허.. 흐흐.. 아..'

하는 할머니의 신음같은

목소리가 내방까지 들려오면..

나는 흡사 귀신소리라도 듣는 듯

소름이 돋아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할머니는 낙엽처럼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고모들도 할머니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에야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몸을 씻으려고

걸레같은 옷을 벗겨내었을때...

할머니의 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물체였다..

그것은..

통닭다리 한짝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 거리셨는지 손 때가 새카맣게 타있었다..

이 감추어둔 통닭다리 한 짝을

나에게 먹이려고 그토록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셨던가..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꼼지락 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시던 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이 손주 생각을 하셨는지....

 


ps.

할머니..

나 통닭먹을 때 마다 할머니 생각한다..

특히 다리 먹을 때마다 항상 그때 할머니가 준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
하고 먹어..

그러니까 이제 그런거 안감춰도 돼..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또 주머니에 밤이며 떡이며 잔뜩 꿍쳐놓고 있을 거지?

그러지 말고 할머니가 다 먹어..

할머니 먹는 거 좋아하잖어..

난 여기서 잔뜩 먹을께...^^

거기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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